내가 애니메이션을 많이 보는 편은 아니지만 아주 극혐하는 제작 방식이 있습니다.
바로 3D애니메이션에 필터 씌우고 2D인척 하는 애니메이션 입니다.
물론 이 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현재 TVA에서도 개판으로 나오는 상황에 극장판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이번 <더 퍼스트 슬램덩크> PV영상을 보면서 딱 잘나온 부분말 홍보용으로 사용했겠거니 생각을 했기에 볼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슬램덩크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게 된 이유는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1. “송태섭”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
우리 태섭쿤은 슬램덩크에서 그리 주역이지 않죠.
4번 채치수, 주장으로 현대회에서 채치수를 넘을 만한 실력자는 없고, 마지막 산왕전에야 자신의 벽을 만나게되는 그런 캐릭터입니다.
10번 강백호, 주인공 보정과 엄청난 피지컬에 성장력까지 발전하는 주인공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11번 서태웅, 서브 주인공에 전국구급 선수로서 매 경기에 주역으로 멋진 모습을 보여 줬습니다.
14번 정대만, 중학 MVP 출신에 좌절과 극복이라는 테마로이어진 드라마는 원작에서 최고의 에피소드로 “농구가 하고싶어요.”라는 최고의 명대사를 남겼습니다.
7번 송태섭, 북산은 베스트5지만 원작에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캐릭터입니다.
송태섭은 사실 정대만의 복귀를위해 만들어진 캐릭터라는 느낌이 강하고 정대만의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소재로서 활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실력은 있지만 현 대회에서 그 누구에게도 제대로 된 승리를 취하지 못했었습니다.
작은키로 상대하는 선수들은 상양의 김수겸, 해남의 이정환으로 작품내 괴물급 캐릭터에 막혀 언제나 힘겨워 하는 것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마지막 경기인 산왕공고와의 대결에서도 송태섭은 이명헌이라는 전국 최강 가드라는 괴물을 맞이하며 싸웁니다. 가장 힘겨운 전투만을 겪어온 선수입니다.
제가 송태섭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라면 능남과의 경기에서 1:1로 윤대협을 제치며 넣은 레이업이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나 정도는 얼마든지 블로킹할 수 있다고 생각했냐?” 이 말이 상대팀들이 보는 송태섭의 위치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어찌보면 가장 힘겨운 시합을 하는 선수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가 된다면, 산왕이라는 팀이 얼마나 강할지 그리고 작중 가장 소외되었던 캐릭터에서는 어떻게 진행될지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원작>,<감독>, <연출>
이노우에 타케히코
2. 모든 것을 지휘하는 원작자 “이노우에 타케히코”
일본에 극장에 걸리고도 이 사실을 몰랐다가 송태섭의 시점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찾아보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간단한 감수 정도 할 줄 알았는데 전체적인 것을 모두 했다고하니 극장판의 이름을 빌린 추억팔이는 아니겠구나 싶었습니다.
반면, 걱정도 있었습니다.
영상에 대한 연출과 출판만화는 전혀 다른 장르라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거 필요업이 천재들은 이거저거 다 잘하고, 이노우에 타케히코의 경우에는 만화를 그릴때도 경기를 한편 만들어서 연출할거니 덜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본직이 만화가다보니 이 부분에서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
<슬램덩크 극장판, THE FIRST SLAM DUNK> 감상 후기는 만족 그 자체 였습니다.
마지막 산왕전이라는 생각에 대부분의 정보 없이 보니 이는 스포츠 장르라고 보기보다는 드라마 장르에 더 가까웠습니다.
송태섭을 기준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고, 우리가 몰랐던 1학년 송태섭, 2학년 채치수의 모습도 좋았습니다.
슬램덩크 5인의 이야기에 가장 겉돌았던 송태섭이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고나니 모든 곳에 함께 있었다는 느낌도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가벼워 보이기만 했던 송태섭의 무거운 개인사까지도 그의 개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것 같았습니다.
경기 곳곳에 들어가있는 회상과 과거의 이야기가 맥이 끊어지지 않고 부드럽게 연결되어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너무나 만족스럽게 보았네요. 박진감 넘치는 농구경기를 예상하고 갔다가 멋진 성장드라마를 봐서 좋았습니다. ^^
그리고 정말 제대로 된 영화라서 좋았습니다.
원작을 즐긴 팬들에게는 설명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도 있었지만 처음 <슬램덩크>를 접한 관객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내용들이 있어서 팬만을 위한, 신규팬들을 위한 작품이 아니라 단 하나의 작품으로도 아주 괜찮은 작품이었습니다.
최근 애니메이션 극장판의 경우 원작팬들을 위한 하나의 대규모 이벤트라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하나의 영화가 아닌 티비 애니메이션의 연장선에 이어져 있다는 것이죠.
일본 최고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된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이 이와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기존 애니팬들에게 1기 쿨을 돌리고 2기가 시작되기전 브릿지 역활로 하나의 큰 전투를 보여주는 것이죠.
애니팬들의 돈으로 굴러가는 일본 영화시장에서 이는 정말 돈이되는 컨셉입니다.
하지만 발매된지 1990년대 만화인 슬램덩크는 이런 점에서 전혀 동떨어진 만화입니다.
기존 팬들은 모두 아저씨가 되어버렸고, 극장판을 개봉하기위해 빌드업도 없었으니 말이죠. 하지만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이 한 편만으로 관객을 만족시켜 주고 있습니다.
영화관에서 보고있는데, 중고딩들도 예상외로 많이 왔더군요.
그런 와중에 들려오는 감탄소리와 응원소리가 있어서 이때 확신 했습니다. 이건 한편의 영화로서도 잘 만들어졌구나. 내가 팬심으로 그러는게 아니구나라는 것 말이죠. ^^;;
<슬램덩크>라는 이름에 걸맞게 경기도 아주 잘 뽑아졌습니다.
만화로 볼때는 정말 산왕전의 1페이지 한컷 하나하나 압도되고 긴장감 있게 느껴졌었습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영화는 정말 그 압박감이 느껴지지 않고 스무스하게 경기에 집중하게 만들어졌더군요.
그런데 이게 정말 진짜 같았습니다.
만화에서는 모든것이 진했다면 이 영화에서는 경기의 강약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특히나 송태섭에 걸었던 올코트프레스가 만화에서는 그냥 압박이 강하다고 느꼈지만 극장판에서 재연된 모습을 보고있자니 “야~ 장난아니다.” 싶더군요.
그리고 그렇게 걱정했었던 3D 애니메이션은 전체적으로 아주 좋았습니다.
이질감이 아예 없다는 아니지만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대화할때나 조금 어색했지 전체적으로 아주 높은 퀄리티로 나와서 너무나 만족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1분 정도는 정말 만화와 애니와 3D애니의 특징을 잘 살려서 멋지게 표현해 감동 그자체였습니다.
왼손은 거들뿐 이라고 마지막에 말하나 싶었지만 그것 조차 방해된다고 느꼈는지 입 모양만 남겼지만 “왼손은 거들뿐.”이라는 대사는 모두의 머릿속에서 뇌내재생되었을 겁니다. ^^
원작을 영화 내에서 정말 잘 자르고 붙였습니다.
원작팬들에게는 조금 아쉬울 수 있겠지만 명장면 명대사를 다 넣었다가는 이게 극장에서 상영이 될 수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릴거니까요.
개인적으로 멋졌었던 장면들도 많이 잘렸고, 그냥 별일 아닌듯 스쳐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처음 <슬램덩크>를 접하는 관객에게는 부드럽게 이야기가 전개되어서 재미있고, 원작팬들의 경우에는 스쳐지나가는 명장면들을 숨은요소로 남아 찾아보는 재미의 요소가 되었습니다. 수회차 관람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을 기존 팬들은 1회차만에 찾아볼 수 있으니 이것도 좋았습니다. ^^
<슬램덩크>는 8090의 문화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 전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지 않으려 했습니다.
최근 리메이크, 리마스터, 그 후의 이야기 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것들에게 추억을 도둑질 당했었기 때문입니다.
8090은 제 생각에는 나름 결핍의 세대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화와 세상은 발전하지만 대다수의 제 또래들은 그 문화적인 수혜를 입은 사람은 적은편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이 <슬램덩크>도 그 당시에는 만화라는 불온서적 중 하나였고, 게임 역시 뇌가 썩는 그런 것들이었죠. 그리고 당시 세대들 우리들에게는 나름 가혹했던 시기였습니다.
문화는 발전하고 뻣어나가고 그 시대에 우리는 함께 있지만 그것만 바라보아야만 하는 세대였습니다.
특히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던 우리는 게임이고 만화고 즐기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그나마 <슬램덩크>는 도서대여점의 여파로 많은 이들에게 전파될 수있었죠.
이런 세대를 지나다보니 나이가들어 쓸데없는 소유욕과 그 당시 누리지못했던 시절의 추억을 가지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90년대의 게임기들의 복각, 수많은 명작들의 리메이크 그리고 옛 작품들의 회귀가 말이죠. 그래서 너무나 걱정했습니다. <슬램덩크>마저 이런 상업적인 피빨이가 아닐까라는 걱정 말이죠.
하지만 달랐습니다. ㅠ
다케이코 이노우에는 자신의 작품을 온전히 우리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 시절의 감성과 감동을 다시금 살아나게 해주었네요.
너무 감사합니다.
최근 본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 이어 정말 극장에서 본게 다행인 영화입니다.
8090 분들 중 안 보신 분들이 있다면 꼭 보라고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꼭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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